-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적도에서 온 편지 <원한은 있으나, 원수는 없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2
조회 2145
이 극은 태평양 전쟁 당시 포로감시원으로 징병된 조선인들이 B,C급 전범으로 몰려 사형수 생활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삼고, 현재에서 과거 회상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시놉시스>
2010년 여름 오후에, 태국에서 일본TV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죽음의 철로”,“침목 하나에 사망자 한명” 이라고 불리운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한 태면철도의 출발역에서 포로 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을 데리고 촬영을 하고 있다.
태국 논프라덕 역에 위치한 태면 철도는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414km의 철도로, 영국인들은 공사 기간을 6년으로 예상했으나 일본은 6만여 명의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공사에 투입하여 단 일 년 만에 철도를 완공하였고, 이 기간 중 1만3000여 명의 전쟁 포로들이 목숨을 잃어 ‘죽음의 철도’로 불린다고 한다. 촬영감독은 김춘길을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자극적인 질문을 계속했고, 이에 격분한 김춘길의 비서는 촬영을 탐탁치 않아 했다. 연극의 주 무대는 김춘길이 겪었던 그 시절, 즉 B,C급 전범으로 몰리고 사형선고를 받을때까지 좌절만 하고 살았던 시절이다. 그 곳에는 조선인, 일본인,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장교 등 일본군 전범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매 끼니를 비스킷 2장으로 전전해야 했다. 김춘길은 한번 석방되었다 다시 잡혀들어간 케이스다. 하루하루 사형선고를 받을까 노심초사했던 시절을 보내는 중, 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당했다. 그 뒤 다른 곳으로 옮겨진 김춘길은, 떠나기 전 이문평이 건네준 편지를 받고는 그 뒤로 이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김춘길은 훗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이 편지에 대한 내용을 공개했고, 이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해석>
작가는 과연 이 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제목 "적도 아래 멕베스" 를 보고 이 극을 보면, 멕베스는 박남성이고 적도 아래라는 말은 날이 더운 태국지방이기 때문이겠지 라는 의미를 알 것이다. 허나 작가는 단순 그런 의미만 두고 제목을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작가는 전쟁의 부조리를 통해 피해받고 억압받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대변해서 이 극을 연출한 게 아닌가 싶다. 그 수감소에서는, 조선인, 일본인, 일본장교 등 결국 다 같은 사형수들이며, 다 같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포로들을 때렸고, 그것은 명령에 의해, 죽지않고 살기 위해 이행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맥베스로 표현했다. 맥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가 왕에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암살당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 자신이 일본군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행동 때문에, 사형대에 올라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정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행동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동기라는 표현을, 작가는 맥베스라는 인물을 제목에 넣음으로써 암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적도에서 온 편지>
과거 수감소 생활을 보면, 그들 중 조선인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일본장교도 있다. 단합력 높은 조선인은 일본인 군인과도 잘 단합된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일본장교(야마가타 타케오)는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주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긍정적이고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 박남성은 극 중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편지를 받고 희망을 갖지만, 결국 처형당함으로써 그 당시 한치의 희망조차 짓밟혔던 상황을 잘 표현해냈다. 항상 눈물이 많고 울먹거리는 이문평은 고국으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꾸준히 써왔고, 그것을 김춘길에게 전해줌으로써 그 당시 그가 품었던 한, 억울함, 그리고 부모님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모두 담은 그 편지가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그 편지는 작게는 이문평 한 사람의 한과 마음이지만 그 당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우리의 청년들, 우리 조상님들의 한과 억울함이 현재를 살고 있는 김춘길에 이르러서도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그런 의미깊은 것을 표현해낸 게 아닌가 생각된다.
박남성이 사형되기 전날, 그는 자신이 만든 맥베스라는 연극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는 연극 도중 갑자기 혼란을 갖는다. 맥베스는 자신이 굳이 왕을 죽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왕을 죽인 사실에 대해 자신 또한 명령에 이행해야만 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말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왔던 우리의 생활에 대해 다시한번 그것이 어쩔 수 없었는가 라는 의문을 던져보게끔 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인 사형수들은 일본 때문에 사형에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들의 원수는 일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는 일본인들을 죽이거나,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원수로 생각한다 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찬에서는, 잘 어울리지 못했던 타케오도 마지막날에는 같이 술자리를 함께하며 즐거울리 없는 만찬을 즐겼다. 조선이 사형수들은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긴 했다. 그랬기 때문에 쿠로다는 죄책감을 가지며 생활했다. 하지만, 그들은 원수를 미워하거나 죽이지 않았다(죽일 기회는 있었다. 김춘길이 흉기를 준비했었다.) 이는 작가가 예전 일본이 대한민국에게 했던 만행들을 그런 식으로 용서 받고 싶어하는, 우리가 일본을 용서해주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극 중 등장하는 일본장교 야마가타 타케오는 자신이 사형수인 상황에서도 자신이 한 행동, 즉 포로감시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행동에 대해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고, 자신이 한 행동은 대 일본제국을 위해 한 행동이며, 자신이 한 행동은 절대 부당하지 않다 라는 의식이 강하게 박힌, “전형적인 일본군인“ 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막상 사형대에 오르기 전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도 한낯 목숨을 아까워하는 인간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당당하던 일본 군인의 정신이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마치 끝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처형당한 박남성에 비해 더욱 약해보였고 비겁해보였다. 아마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전쟁에 참여한 건 일본이지만, 가장 추하고 가장 비겁한 국가 또한 일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가장 떳떳하고, 가장 비굴한 모습.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을 일본장교 야마가타 타케오를 연기한 배우, 조정근씨는 극 중 내내 중앙에 모여있는 사형수들과는 다르게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는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장교다. 한낯 사병과 같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사형수일지라도. 그것이 일본 군인의 자존심이며,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해 떳떳함을 대사 한마디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배우를 통해 일본군의 불필요한 자부심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다. 극 중 중재역할을 담당한 쿠로다 나오지로(최용진)은 일본인이다. 허나, 조선인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조선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같은 일본인이지만 쿠로다 또한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한 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는 자신의 조국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조선인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박남성이 처형대로 올라가기 전, 철창 사이로 일어난 그 둘의 포옹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일본인을 대변하는 쿠로다를 조선인 희생자와 포옹시킴으로써 일본이 한 짓에 대한 반성을 하고있고,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재일교포2세라서 이해가 갈 것이다. 박남성이 처형당하기 전날, 이문평과 박남성, 쿠로다와 김춘길 4명은 서로 부등켜안고 아리랑을 울부짖는다. 다음 날 처형당하는 건 박남성과 타케오, 그러나 타케오는 전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사형 당하기 직전까지는... 그리고 조선인들과 아픔을 함께 한 일본인 쿠로다의 모습은 가슴 속이 뭉클할 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아마, 그 전까지 쿠로다는 그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일본인을 대변하여 사과를 하기 때문)
<무대장치의 효과>
무대장치 또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극 전개 상황에 걸맞게 스크린천막을 활용하여 공간이동의 제약을 한층 해소하였다. 수감소 내부를 보면, 그들은 각자의 철창 속의 방이 있음에도 중앙 마당같은 곳에 나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바둑도 두며, 편지도 쓰며..이들에게 있어서 중앙 마당은 만남의 장이며, 자신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볼 수 있는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작가의 의도는?>
작가는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연출을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아픔이 현재까지 이어져있고 아직 그 고통 때문에 아파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설정을 잡은 이유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시대 사람들이 과거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오해하고, 그들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기는 커녕 더욱더 큰 고통을 주려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함으로 보여진다. 극 중 감독은 전쟁의 부조리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자극적인 소재만을 원하는, 정의는 알고있지만 나서지 못하는 이시대 사람들을 대변하였고, 카메라담당은 이런 잘못된 역사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변하며, 오디오담당은 잘못된 것을 알고 그것을 바꾸어보려는, 어떻게 보면 우리시대에 남아있는 영웅심리를 표현했다. 작가는 이 세사람 만으로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표현해냈을 정도로 이 시대 상황에 대해 잘 알고있고 작가 또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이 극을 연출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마지막 엔딩장면 전에, 이미 나이들어 늙어버린 김춘길이 과거 회상씬 무대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회상씬에서 늙은 김춘길의 모습으로 등장하였고, 남아있는 쿠로다와 이문평은 아무렇지 않게 김춘길을 대한다. 김춘길은 석방 후에도 수용소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5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 그는 과거 회상씬에 등장하기 전에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자신 혼자만 석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에. 하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 예전 석방 전에 건네받은 이문평의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그가 이제는 그들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마지막 과거 회상씬이지만 늙은 김춘길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제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한, 억울하게 죽은 그들을 대신해 세상에 알릴 수 있기 때문에..그것이 그들과 한 마지막 약속이기 때문이다.
<평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별 5개 중 3.5개를 주고 싶다. 극이 굉장히 긴 시간(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어 왔으면서 중간중간 웃음요소를 주긴 했으나, 약간 전개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시대상황을 잘 표현했고 무대장치, 그리고 연출방법 등은 굉장히 훌륭했다. (1인 2역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그리고 약간의 반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노인은 기차소리를 냈기 때문에 모두 박남성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아픈 과거를 재일교포인 감독이 연출해냈고, 극 중 등장인물은 대개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의 과거를 올바로 알아가는 과정이 나는 개인적으로 보기 좋았다. 요즘 일본의 망언 등을 봤을 때 일본사람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가득한데, 감독은 이런 연극을 통해 일본에는 역사를 올바르게 잡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적도(赤道)아래 멕베스...적도는 단순 지리적 위치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 된 것이 아닐까.
적도(원수 적(敵), 인도할 도(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