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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기록의 기능을 가진, 가볍지만은 않은 연극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919

기록의 기능을 가진, 가볍지만은 않은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

 

 명동예술극장에서 2010년 10월 06일 7시 30분에 시작한 이 연극의 제목은 적도아래의 맥베스이다. ‘적도아래의 맥베스’ 이 연극을 관람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제목만을 본다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작품을 재구성하거나 재구현한 연극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적도아래의 맥베스’란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태평양 전쟁 당시 BC급 전범들 중 조선인들을 주제로 한 연극이다. 제목에서 의미를 찾자면 맥베스란 단어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비극이라는 단어와 연관성을 갖게 된 점을 통해 전범으로 몰린 각각의 인물들의 일생이 비극적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갑자기, 뜬금없이, 왜, 무엇 때문에 정의선 작가는 이 연극을 제작하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점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이학래씨의 인터뷰,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먼저 작가와 이학래씨의 인터뷰를 알아보자면 이 작품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주인공인 춘길은 이학래씨를 모델로 구성된 캐릭터이다. 이학래씨는 전쟁 직후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실제로 2번의 사형판결과 2번 감형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작가가 이학래 씨와의 인터뷰에서 창이형무소의 끔찍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점, 그리고 이 이야기가 끝난 후 이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같은 동포니까,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진 않겠지요.”라는 말을 통해 전쟁 전범들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오해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확실한 이해와 오해 해소에는 2006년 한국정부가 태평양 전쟁 BC급 전범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자’로 인정하고 명예회복 하기 전까지 당사자들과 당사자의 가족들이 겪었을 피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정황들을 통해 치욕스러운 역사일지라도 그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여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연극을 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기 전 1942년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일본군의 싱가폴과 여타 다른 점령지를 얻게 되면서 30만명에 이르는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투병력 인원의 부족함 때문에 인원을 증원시킬 필요가 잇었고 이 과정에서 당시 강제 점령, 강제치하에 있던 조선에서 총독부를 통해 인원을 모집하게 된다. 달콤한 사탕발림과 당시 일본의 착취로 인해 궁핍했던 조선의 청년들은 모집이라는 탈을 쓴 강제적 인원 모집에 의해 연합군 포로수용소 감시원들로 이등병보다 못한 ‘군속’의 신분이 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비극이 아니라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이 진정한 비극이다. 보통 상식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전범이라 한다면 일본이 패전국이니 일본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 또한 전범으로 분류되어 이들도 전범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조국으로부터는 일본군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갈 곳 없는 거지 꼴이 되어 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해를 해소하고 이해를 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정의신 작가(53)의 자신의 인생과 극 중의 전범들이 처한 상황이 서로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연극과 영화, TV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국내에서도 2008년 ‘야키니쿠 드래곤’과 2010년 ‘겨울 선인장’등으로 저명한 이 작가가 전범들과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라는 의문 아닌 의심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의심에 대한 답은 재일 교포 2.5세로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는 차별을 받아왔던 자신의 청소년기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인으로 분류되고,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인으로 분류되는 국적불명의 재일교포의 위상이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주인공들과 동병상련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억지가 아닌 당연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 대한 외재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는 여기까지 하고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김춘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는 장면과 과거 회상신이 겹쳐서 진해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2010년 여름 어느 오후, 태국의 논프라덕 역에서 일본의 TV프로그램 외주제작회사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는 포로 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큐멘터리인데 이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과정이 현재 진행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고 과거 회상신으로는 1947년 여름, 김춘길은 전범으로 잡혀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 수용되게 되는데 그는 무죄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가 다시 잡혀 들어와 교수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게 되는 상황에서 주변 인물들간의 갈등이나 상황들이 과거의 회상신이다.

 연극의 장치나 조명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특색 있게 느껴졌던 부분 두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1부와 2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반딧불이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막을 내리는데 태국에서는 반딧불이 사람의 영혼이라는 설명을 앞에서 해준다. 태면 철도를 만들다 죽어간 수많은 포로들, 이들을 감시하다 전범으로 몰려 죽은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영혼이 반딧불들의 수많은 불빛처럼 많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살펴본 무대의 구성이었다. 대학교의 소강당에나 어울릴만한 넓지 않은 크기의 무대 위에 철도가 배치되어 있는데 극이 진행되면서 이 철도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고 자칫 잘못 보면 단순한 배경으로만 보일 수 있는 철도가 슬픔과 고통이 담겨 있는 철도로 바뀐다고 느낀 점이다.

 세 번째는 철도를 배경으로 한 무대 뒤로 가려져 있던 막이 올라가면 그 뒤 쪽으로는 꽤 넓은 공간의 무대가 더 나오게 되는데 그 뒤로는 형무소의 문들과 사형집행을 하러 가는 계단, 물을 마시기 위한 수도꼭지, 그리고 철창들을 통해 형무소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구성이 인상 적이었다. 이렇게 앞 뒤의 무대 구분되어 있는 무대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넘어 갈 때 흘러나오는 음악과 스크린에 나오는 화면이 전범들의 슬픔을 잘 표현하였고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슬프거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 적이었던 부분이다.

 반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 중에 형무소에 있는 인물들의 옷이 조금 더 후질근하거나 더러운 옷으로 표현되었다면 조금 더 실감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배우들의 얼굴 또한 기름 때에 찌들어있는 상황을 묘사했다면 몰입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배우 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박남성 역을 맡은 정나진 분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연극을 보는 동안에는 그저 강렬하고 남성적이고 거칠다는 느낌에 인상적이었지만 연극이 끝난 후에 조금 더 의미를 깊게 생각해본다면 박남성이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연극배우의 꿈을 접어야 했고 그런 꿈을 좌절하게 만든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포로감시원을 자원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인물의 순수성이나 당장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지니고 있던 것을 보면 거친 면과 더불어 가장 낭만에 젖어 있던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어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또 주인공 김춘길을 연기한 서상원 분은 극이 좀 진행되고 나서 등장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박남성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인지 주인공이라는 역할에 비해 비중있게 다가오진 않았던 인물이다.

 그 밖에 야마가타 타케오의 역할을 맡았던 조정근 분의 연기는 맡은 역할이 그래서 인지 몰라도 형무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마치 최홍만이라는 격투선수가 격투무대가 아닌 가요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색했다. 물론 연기를 잘 못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분들의 체구와 맡은 역할에 대한 부합도가 높아서 인지 몰라도 많이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향기기를 담당하던 역할의 캐릭터는 긴장을 해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대사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가뜩이나 쉽게 흥분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상황에서 더 흥분한 거 같아 대사 전달이 잘 안되었고 주로 대화를 주고 받는 미야지마 마사야의 캐릭터와도 호흡이 좋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 좋았지만 미야지마 마시아 캐릭터는 중간중간 어색하게 끼워 넣는 농담이나 능구렁이 같은 상황 모면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일부러 어색함을 표현했다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색한 연기였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작가가 설명한 왜곡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난 실수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바로잡으려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의도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에도 철도와 그 뒤로 이어지는 형무소 풍경, 그리고 개성있고 독특하게 그려진 캐릭터들이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난 후에 또 다시 담배 한 대가 생각나듯이 계속 떠오르게 하는 여운을 남긴 것 같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

-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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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탈퇴회원)

    저는 야마가타역의 배우가 세트 주변을 배회하는 장면은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마지막 절규에서 동떨어짐과는 뭔가 다른, 다른죄수들과의 동질감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 작품의 배경과 작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셨네요. 덕분에 연극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0.10.17 14:29

  • (탈퇴회원)

    이번에 처음으로 연극을 보려고 합니다. 리뷰를 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 연극에 대하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리뷰를 자세히 적어 주셔서 제가 처음으로 보는 작품으로 선정해도 될 것같습니다. 꾸며내지 않은 듯한 비평이어서도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0.17 14:07

  • (탈퇴회원)

    저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신 것 같아서 흥미로운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0.17 13:55

  • (탈퇴회원)

    저도 이연극 보려고 글 남긴거 보다가 님 리뷰를 봤는데 이 연극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꺼같네요 ^^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돌아보고 공연보기 전에 알아둘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0.17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