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8월
[어린이청소년극 이야기]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안녕, 서계동' 체험기
이송하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안녕, 서계동' 체험기
#안녕,서계동 #어린이청소년들모여라 #공간의탈바꿈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2013년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어린이청소년관객을 위한 독립공연예술가들의 도전과 함께 시작했다. 독립공연예술가란 배우, 연출, 작가의 한계를 두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공연을 창작하여 관객들과 만나는 1인 예술가를 의미한다. 이들은 동료 독립공연예술가들과 고민을 나누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롭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이후로도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많은 독립공연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작지만 특별한 공연’ 잔치가 이어졌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잠시 멈추었던 축제는 2022년 일상의 회복과 함께 관객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축제에 대한 반가움과 설렘과 함께,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공존한다. 국립극단 부지 이전으로 2022년 이후 서계동에서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안녕, 서계동'이라는 부제로 관객들에게 그리고 공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서 서계동 곳곳의 숨은 공간들은 무대가 되었고 관객들과 만났다. 실내 공연장이라는 한정된 무대뿐만 아니라 배우가 서 있는 어떤 장소든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은 일상적 공간에서 어린이청소년관객들이 연극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회를 넓혀주었다.
공간의 활용과 변주가 두드러지는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서 그동안의 세월을 함께한 서계동 국립극단이라는 장소는 큰 의미를 지닌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공간에서 선보이는 공연은 새로운 설렘을 낳기도 하지만, 이전의 추억과 정취를 떠올리게도 만들 것 같다.
이에 따라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현장을 새롭게 변신한 공간을 중심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본 웹진은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 관객으로 참여한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2022한여름밤의작은극장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3일간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었다. 축제는 크게 2022 창작, 초청작, 큰인형 퍼포먼스 공연과 관객 참여 전시, 아주작은극장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15개 공연팀이 3일에 걸쳐 서계동 곳곳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실내 공간은 기존에 있던 공간을 활용했지만 야외의 경우, 공간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공연장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실내 공간인 스튜디오둘, 소극장판과 야외 공간인 히스토리 극장, 동그라미 극장, 블록블록 극장, 등나무 극장, 작은숲속 극장, 아주작은극장에서 공간과 관객이 새롭게 만났다. 관객들은 취향에 따라 신작 5편, 초청작 9편, 아주작은극장, 큰인형 퍼포먼스 중 원하는 작품을 미리 예매하거나, 혹은 예매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풍경
#들어서다 #푸드트럭 #히스토리극장 #관객의시선 #마치놀이터
서계동 국립극단에 첫 발을 들이면 푸드트럭이 왼쪽에 들어서 있었다. 푸드트럭에서는 츄러스와 핫도그, 시원한 커피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제공해 관객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관객들은 달콤한 츄러스를 먹으며 야외 공연을 감상하기도 했다.
푸드트럭을 지나면 히스토리 극장이 바로 보였다. 히스토리 극장은 총 세면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왼쪽 벽면에는 2013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진행된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연혁을 사진과 짧은 글을 사용하여 소개했다. 정면 벽에는 그동안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 참여했던 수많은 창작진들의 연출노트 중 9명의 창작진의 글을 선별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의 기억을 전시했다. 오른쪽 벽면은 지금까지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을 만든 모든 스태프와 창작진의 크레딧으로 가득 채워 그들의 노고를 기렸다. 한편 창작자의 시선 사이사이로는 빈틈이 있었는데, 축제가 시작함에 따라 빈 벽면은 점차 관객들의 시선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2013년부터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이 축적해온 기억 옆에 새롭게 더해지는 경험들을 실시간으로 쌓아나갔다. 전시 기간 동안 히스토리극장은 ‘극장’이라는 말에 걸맞도록 관객의 기록행위 자체가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은 붉은 책상이 놓인 잔디밭에 노란 둥그런 방석을 깔고 아무렇게나 앉아 형형색색의 크레파스, 색연필, 유성매직을 활용하여 그들의 시선을 채워 넣었다. 어떤 특별한 조형물이 없어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은 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주작은극장 #오로지당신만을위한 #게릴라공연
그 옆의 아주작은극장 <인어공주>, <작은광대 우주극장 ‘탈이야기’>, <허둥의원>, <단춤>은 오직 한두 명 혹은 세 명의 관객만을 위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인어공주>, <작은광대 우주극장 ‘탈이야기’>, <허둥의원>은 백성희장민호극장 로비 앞쪽에 위치해 관객들은 장난감 집 크기의 극장에 고개를 들이밀고 그림자극이나 인형극을 즐겼다. 관객들이 배우와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나누어 낀 채 교감할 때 야외의 작은 부스는 한순간 그들만을 위한 아름다운 극장이 되었다. 동그라미 극장 앞편 잔디 공간에서는 배우가 한 명의 관객과 신나는 춤 한판을 벌이는 <단춤>이 펼쳐졌다. 같은 장소에서 짧은 게릴라 형식의 공연도 진행되었는데,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재주 있는 처녀>와 <돌부처와 비단장수>는 관객이 한눈 팔 틈이 없도록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깜짝 선물같은 공연이었다.
#공간스케치 #작은축제 #붉은혹은초록
히스토리 극장에서 흰 천으로 가려진 작은 문 혹은 큰 문을 지나가면, 본격적인 공연장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의 전구가 국립극단 중앙 건물에 길게 늘어져 붉은 건물이 한층 더 따뜻하게 빛났다. 지상은 붉은빛으로, 지면은 초록빛의 나무와 잔디로 꾸며져 공간에 활기를 더해주었다. 여러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전구,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언어와 몸짓은 일상적인 공간을 환상적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후덥지근한 초저녁에는 땀에 젖었고, 어둑해질 때 즈음에는 모기가 기승을 부렸지만 오히려 축제에 생생함을 더해주는 것도 같았다.
#동그라미극장 #안녕,씨앗씨
동그라미 극장에서는 예매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 배우들은 관객의 참여를 이끌며 쌍방향적 공연을 만들었다. 진행요원들은 공연 시작 직전 공연 정보를 적은 LED 블랙보드를 들고 다니며 <돈키혼자> 공연이 시작됨을 알렸다. 관객들은 공연 일정을 몰랐더라도 이를 듣고는 삼삼오오 동그라미 극장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잔디밭에 앉거나 그 바깥에 붉은 의자를 놓고, 혹은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저녁 즈음에는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창작자들의 성장과정을 담은 큰인형 퍼포먼스 <안녕, 씨앗씨>가 시작되었다. 진행요원들이 큰인형 퍼포먼스 도중 관객에게 꽃을 나누어주었고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동그라미 극장 안으로 들어와 큰인형,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관객들은 꽃을 화단에 심으며 큰인형 퍼포먼스를 같이 완성해 나갔다. 동그라미 극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을 때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갔다.
#작은숲속 극장 #숨은장소 #무대제작소
축제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국립극단 중앙건물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왼쪽으로 꺾으면 백성희장민호극장 건물 뒤편과 무대기술팀 건물 사이, 천막을 친 아늑한 작은숲속 극장이 펼쳐진다. 이 공간은 무대제작소를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작은숲속 극장에서 상연된 <헨젤과 그레텔 인 서커스>에서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오르골 소리와 함께 여러 다채로운 인형들이 나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블록블록극장 #초록계단무대 #그옆둥근무대
블록블록 극장은 국립극단 중앙건물 계단과 그 옆의 공간을 무대로 만들었다. 중앙건물 계단에는 초록색 카페트가 깔렸고, 그 옆 모서리 공간에는 붉고 둥근 무대가 생겨 조형적인 레고를 쌓아놓은 듯한 무대가 형성되었다. 블록블록극장에서 공연되는 <[]를 기다리며>는 중앙건물 계단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배우는 공연 중간에 둥근 무대로 장소를 옮겼는데, 관객 또한 배우와 함께 이동하며 같이 호흡했다. 어둑해질 때 즈음 둥근 무대에는 작은 테이블과 스탠드 조명 하나가 놓였다. <벌레가 된 소년>은 작은 테이블 위에서 손전등 랜턴을 이용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오브제에 그림자를 비추어 그들의 모습과 정서를 표현했다.
#등나무 극장 #매미소리
등나무 극장은 동그라미 극장을 지나 블록블록 극장의 옆쪽에 자리한다. 봄에는 하얀 목련이 핀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장소는 한여름 울창하고 푸르른 나무와 함께 등나무 극장으로 변신했다. 초저녁에는 <네발로 걷는 친구>가, 어둑해질 즈음이면 <그림자인형극으로 만나는 창부타령>이 등나무 극장에 찾아왔다. 등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는 해가 늦게 기우는 8월 한여름 날, 초저녁이 된 오후 다섯 시에도 힘차게 소리를 내뿜었다. 배우의 목소리와 더불어, 매미 소리는 마치 음향처럼 공연에 녹아들었다.
#스튜디오둘 #연습실탈바꿈
평소 관객들이 접할 수 없었던 국립극단의 실내 공간 또한 새로운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평소 스튜디오둘은 연습실로 활용되어 7-8월에는 국립극단에서 2022년 하반기에 선보일 <발가락 육상천재>, <세인트 조앤> 연습이 한창이었다. 특히 2022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워크숍과 신작팀 연습 또한 이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연습의 한 과정에만 존재했던 공간이 공연장으로 변모했고, <망태할아버지가 온다>, <할아버지의 창문>, <손순례 여사를 소개합니다>가 관객들과 만났다.
#소극장판 #공간의재발견
소극장판은 실제 국립극단 공연이 올라가는 장소로, 2022년 상반기에는 청소년극 단막극 연작 <트랙터>가 무대에 올랐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서는 <깨진 손톱>, <리베의 색은 빨강>, <이 세상 말고>가 소극장판에서 공연을 올렸다. 창작진들은 소극장판을 기본적 극장의 환경으로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공간으로 재발견했다. <이 세상 말고>에서는 평상시 어두운 공간 속 조명에 의존하여 관객을 이끌어갔던 기존의 무대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시켰다. 배우는 창문을 열어 빛이 새어 들어오게 하기도, 극장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다시또만나 #또다른시작
이번 축제에서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창작자들은 오랜만에 서계동에 모였고, 관객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서계동에서는 마지막 안녕을 기념했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시선으로 어린이청소년 관객과 만나는 예술가들의 시도는 계속되기를 바란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으로 국립극단의 구석구석, 계단과 계단 사이, 무대 제작소, 나무 아래, 야외 마당, 극장의 로비, 연습실 등 어떤 공간이든 무대로 만들 수 있는 배우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다시 또 어디선가 관객과 새롭게 만나는 독립공연예술가들의 무대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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