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유산> 사랑과 욕망, 그리고 인간의 고귀함
-
작성자 김*경
등록일 2014.12.25
조회 2492
연극을 보기 전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나에게 <위대한 유산>이란 소설은 한 소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를 돕게 되면서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의 희미한 기억을 애써 되살리며 디킨스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19세기에 잡지 <1년 내내>에 연재된 소설이라고 하는데요. 마치 일일드라마와 같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한 캐릭터의 등장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읽다 보니 마지막에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게 되고 욕망의 덧없음과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나를 다시 돌아보고 싶게끔 만들었습니다. 급작스럽게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있나 싶었지만 따뜻한 해학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이야기와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며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아름다운 문장은 고전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명동예술극장의 고풍스럽고도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무대에서 과거와 현재의 핍과 에스텔라가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무대는 순수와 세속을 넘나들며 핍의 성장과정과 통증들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공연전부터 무척 설레였는데요. 평소 반듯한 역할만을 소화해온 김석훈님은 부서질 듯 연약하지만 갖은 역경 속에서도 끝내 굳은 의지로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는 핍 역에 무척 잘 어울렸으며, 유령과도 같은 해비셤역의 길해연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조 역의 정승길님(정승길 배우는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아는 배우같아요), 허울뿐인 신사인 변호사 재거스역의 조희봉님, 그리고 이번에 처음 보게 된 아름답고 차가운 에스텔라역의 문수아님과 구름사나이 드러믈역의 양동탁님(피리피리핍할 땐 왜 이리 얄밉던지) 모두 너무 멋졌습니다. 특히 무서운 죄수이지만 하룻밤의 친절을 잊지 못하고 헌신적으로 핍을 사랑하는 맥위치역의 오광록님은 소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찰나의 등장이지만 어찌나 울컥하면서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지 연극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핍과 함께 진정한 자아를 찾아 2시간 동안의 여행을 떠나고 현실로 도착하니 추운 겨울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지는 그런 착한 공연이었습니다.
가족과 다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 드문 요즘 위대한 유산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공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문득 미스 해비셤이 하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어때, 예쁘지? 사랑받을 수 있겠어? 자신있니? 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