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동주앙'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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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5
조회 2026
3월 27일, 나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동 주앙”을 관람했다. 내가 관람하고 온 “동 주앙”은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몰리에르의 원작 “동 쥐앙(돈 후안)”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7세기 이후 현재까지 오페라,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변모하였다. 그 중 내가 관람한 “동 주앙”은 우리나라에서 1979년 이진순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두 번째로 공연되는 연극이다. “동 주앙”의 원작가 몰리에르는 1622년 파리 태생으로 <웃음거리 재녀들>, <평민귀족>, <인간혐오자>등 수려한 작품을 발표한 희극작가이며 인물의 표면뿐만 아니라 그 심리까지 파고들어 인간을 모랄리스트적으로 고찰한 함축성 있는 희극을 이룬다. 또한, <에이미>, <왕은 왕이다>등으로 2010년 한국연극계에 화제를 몰고 온 연출가 최용훈의 새로운 감각에 의해 연출되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인 ‘동 주앙’은 방탕한 주인공으로 여러 여자를 탐하며 신을 모독하다 결국 죽은 자에게 벌을 받게 되며 옴므파탈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동 주앙’ 역할을 맡은 김도현 배우는 남성적이고 권위적이며 가부장적인 느낌의 ‘동 주앙’을 연기했지만 본래 ‘동 주앙’의 역할에 엉뚱한 면이 있기 때문에 얄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다음으로 ‘동 주앙’의 하인인 ‘스가나렐’은 우리나라의 마당쇠 같은 인물로 주인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인 욕도 하지만 마음 속 에는 신분상승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주인을 위하는 척 하고 아첨하는 인물이며 ‘스가나렐’은 사실상 극 중 나래이터를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스가나렐’역을 맡은 배우 정규수 배우는 TV나 영화에서도 많이 봤던 배우로 때로는 과감하게 반항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아첨하는 영악한 하인의 역할을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잘 연기해서 연극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동 주앙’의 아버지인 ‘동 루이’의 역할을 맡은 원로배우 권성덕은 1979년 초연당시와 32년이 흐른 지금 두 번째 공연에서도 같은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연극 “동 주앙”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동 주앙’과 그의 하인 ‘스가나렐’은 ‘동 주앙’의 아내 ‘돈느 엘비르’를 피해 여행을 떠났다. 자신의 바람기를 정당화하는 ‘동 주앙’을 보며 그의 하인 ‘스가나렐’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동 주앙’은 약혼녀가 있는 여자를 납치하려다 물에 빠지고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다시 그 마을의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하인 ‘스가나렐’은 사기꾼이니 악마니 하면서 끊임없이 앞뒤에서 ‘동 주앙’을 비판하지만 ‘동 주앙’은 언제나 당당하다. 그러다가 ‘엘비르’의 명예를 되찾고자 ‘동 주앙’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뒤쫓던 ‘엘비르’의 오빠들을 피해 다니다가 우연히 자신이 죽인 기사의 무덤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그 기사의 석상이 있었는데 ‘동 주앙’이 장난 식으로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고 하자 기사의 석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 주앙’과 ‘스가나렐’은 무서워서 도망을 나왔고 도망을 나와서도 위선의 자유를 만끽한다. 잠시 후, ‘동 주앙’이 검은 옷을 입고 성경책을 들고 나타난다. 그래서 모두가 ‘동 주앙이 잘못을 뉘우쳤나?’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동 주앙’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행동들을 면죄해줄 가면을 뒤집어 쓴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인 ‘스가나렐’은 그런 ‘동 주앙’에게 그러다 천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겁을 주고 달래지만 ‘동 주앙’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때, 하늘에서 ‘동 주앙’에게 지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경고를 내린다. 하지만 ‘동 주앙’은 그 경고를 듣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주변에서 ‘동 주앙’에게 잘못을 뉘우치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뉘우치지 못하자 ‘동 주앙’은 결국 기사 석상의 심판에 따라 불구덩이에 빠져 천벌을 받게 되는 최후를 맞게 된다.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특징에 많이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먼저 주인공인 희대의 바람둥이 ‘동 주앙’은 여성을 쾌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사랑을 믿지 않았고 타고난 자유주의자였다. 산수 외에 신도 종교도 사회적 정의까지도 믿지 않는 그는 종교도 법도 규범도 없는, 신과 인간의 법을 모두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갖춘 옴므파탈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들을 면죄해줄 일종의 가면을 쓰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영악한 인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다니는 ‘동 주앙’을 보면서 그런 자유로움이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동 주앙’을 보면서 그동안 나는 너무 도덕이나 규범 등에 얽매여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동 주앙’이 대신 표출해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 다음 ‘동 주앙’의 하인 ‘스가나렐’은 주인 ‘동 주앙’에 대한 마음을 감추고 아첨을 할 수 밖에 없는,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첨하고 또 아첨하는 요즘 사회에 만연한 그런 사람들 같았다. 주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고 또 주인의 못된 행동들을 고치고 싶지만 자신의 경제적인 문제와 신분상승 욕구에 눌려 끝없이 아첨을 하는 ‘스가나렐’이 가장 기회주의적인 캐릭터라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스가나렐’이 안쓰럽기도 했다. 또한 ‘스가나렐’이 처음에는 마냥 아첨만 하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는 ‘동 주앙’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 위해 ‘동 주앙’에게 진심을 다해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을 보면서 ‘스가나렐’은 그래도 ‘동 주앙’보다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데에는 조금 더 생각이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능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동 주앙’과 돈을 벌기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겁하게 살아가는 하인 ‘스가나렐’의 대비를 통해 연극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 것 같다. 다음으로 ‘동 주앙’의 아버지 ‘동 루이’는 처음에는 귀족가문의 체면과 명예만을 중시하는 인물 같았다. 그래서 오직 가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 주앙’에게 바르게살기를 권하는 것 같았지만 연극이 점점 진행될수록 아들 ‘동 주앙’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문의 명예와 체면을 중요시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 정이 있는 인물 같았다
이 연극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은 ‘동 주앙’이 관객들에게 “여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선의 껍데기를 쓰고 앉아 있느냐”라고 했던 장면이다. 솔직히 나는 ‘동 주앙’의 그 대사를 듣고 속으로 많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순간 나를 빠르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20년 사는 동안 많은 위선의 껍데기를 쓰고 살아온 것 같아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게 되었다. ‘동 주앙’의 이 대사에 이번 연극에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동 주앙’이 관객들에게 그런 대사를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우리가 뒤집어쓴 위선이라는 가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동 주앙’이 숲에서 만난 거지에게 신을 욕하면 금화를 주겠다는 대사는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 중에는 기독교인 사람들도 있을게 분명한데 하늘에 대고 신을 욕하라고 하고 거지는 금화를 받기위해 ‘동 주앙’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기독교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불편했을 것 같고 연극 자체가 종교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없는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기독교인들을 위한 연극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 ‘엘비르’의 두 오빠가 나온 장면도 인상 깊었다. 모욕당한 여동생의 명예와 자신을 구해준 몸값을 저울질하며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는 그들이 바로 몰리에르가 비판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연극을 보러가기 전까지 ‘동 주앙’에 대한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었고 게다가 연극 포스터마저 뭔가가 우울해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 처음엔 그저 지루할 것만 같았는데 막상 보고나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력부터 대단했다. 처음에 배우들이 모두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배우들의 목청이 대단하단 것을 느꼈고 ‘동 주앙’역을 맡은 김도현 배우가 땀 흘리며 열연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정말 배우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연극무대는 큰 TV모니터 안에 작은 TV 모니터가 들어있는 모습이었는데 ‘동 주앙’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액자구성의 공간이었다. 이런 액자구성의 연극무대가 자신의 욕망대로만 행동하는 ‘동 주앙’의 내면세계를 잘 표현해낸 것 같다. 또 무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소품과 무대도 나의 시선을 끌었다. 무대 조명도 극 중 상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배우들의 의상도 각자의 캐릭터에 딱 맞아서 그 캐릭터의 역할과 옷이 너무 잘 어울려서 배우, 무대, 조명, 의상이 모두 잘 어우러진 2시간의 공연이었다. 원래는 17세기의 작품이라 장식적인 대사도 많고 그때와 지금은 다른 관습도 많지만 화법 등을 현대적이며 어색하지 않게 손질하여 요즘 시대의 관객이 봐도 지루하지 않도록 한 작품이다. ‘동 주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와중에 어느덧 가슴을 파고들어 우리들 자신에게 스며있는 위선의 가면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동시에 한 번쯤 본인의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