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죽음의 공포앞에 사라져 버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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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5
조회 1867
명동 예술극장과 극단 미추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전쟁의 책임을 대신 지고 전쟁범죄인으로 낙인찍힌 조선인 B, C급 전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은 2010년 여름 어느 오후부터 시작된다. 포로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담는 기획의 다큐를 태국에서 촬영하고 있다. 연출가와 카메라 감독은 그냥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춘길'의 비서인 '요시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면서 '춘길'에게 촬영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지만 '춘길'은 동료들의 아픔을 그리고 고통을 대신 알려주기 위해 촬영을 계속 진행하기로 한다. '춘길'의 인터뷰와 과거 포로수용소인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 안에 수용된 '춘길'과 같은 조선인 감시원이고 항상 편지를 쓰던 ‘이문평’과 늘 ‘맥베스’ 책을 끼고 다니던 '박남성'과 명령을 내린 자들은 면죄부를 얻고 그 명령에 따른 군인들만 재판을 받는 것이 불만인 일본인 '쿠로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의 간부였던 야마가타, 이 다섯 명의 불안, 공포, 희망이 담긴 모습들 보여주면서 전개된다. 마지막에는 '박남성'과 '쿠로다'가 사형집행 받고 '춘길'에게 '이문평'이 편지를 건네주고 그 편지를 촬영 감독에게 ‘춘길’이 건네주면서 끝난다.
2008년 한일 공동제작 작품인 <야끼니쿠 드래곤>으로 한일 양국의 모든 연극상을 휩쓸며 한일연극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극작가 정의신은 제목에 ‘맥베스’라는 인물을 넣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맥베스’라는 인물과 극중에 나오는 B,C급 전범들과 공통점이 있어서 일 것이다. ‘맥베스’라는 인물은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서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인물인데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서 왕을 죽였다는 점에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전범들과 비슷하다. 전범들도 한국인 감시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일본인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결국 전범이 된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무대장치가 특이 했는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중앙에 설치되어있던 철도였다. 이 철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바꿔줄 때 나오던 스크린이었는데 스크린에는 매번 과거에 실제 포로수용소의 전범들 사진이 나오고 있어서 이 연극이 실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포로수용소의 공간을 표현한 무대장치 중에서 기억나는 장치는 바로 사형대였다. 이 사형대는 감옥 안에서 보일 수 있도록 바로 옆에 붙어있었고, 이것을 보면서 연출가는 포로수용소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사형대와 감옥의 거리로 표현한 것 같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제일 기억에 났던 배우는 ‘박남성’ 역할을 맡은 정나진 배우였다. 이 배우는 어둡고 적막하기만 한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활기찬 연기를 펼쳤는데 정말 인상 깊었다. 모두들 침울하고 삶에 대한 희망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 ‘박남성’은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기차소리도 내고 맥베스 연기도 보여주었다. 마지막 죽기 전에 ‘춘길’에게 담배를 받아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항상 희망을 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던 ‘박남성‘도 결국 죽게 되는 것을 보면서 과거 포로수용소에서 희망은 죽음이라는 큰 공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적도아래의 맥베스>를 보면서 희망을 품을 수조차 없었던 과거의 B,C급 전범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